더우시죠? 위에 시원한 사진 올릴테니 배경화면으로 깔아 보세요.^^
**요즘 뭐하고 사는 지 정신이 없네요. 열심히 살던 때 쓴 글을 보며
아자 아자~ 힘 내야죠. 전에 채팅방 열며 열심이던 사이트에 올렸던 글입니다.
^^ 2000년에 쓴 글)**
내가 사는 방법.
자명종 시계소리에 눈을 뜬 남편이 아픈 몸에도 주섬주섬 옷을 입으려 한다.
하루 더 쉬라고 말리고 혼자 아파트 단지에 신문을 돌리러 나왔다.
남편의 안부를 물어주는 우유 아줌마, 경비원 아저씨,
상쾌한 아침공기가 끈끈하던 몸을 가뜬하게 감싸준다.
어제 채팅방에서 감기에 좋다고 한 알로에를 어머님께 가져다 달라고 부탁해야지..
사주대 분들이 가끔씩 접하는 나의 글을 보고 긍정적으로,
어떻게 보면 너무 현실에 만족해서 산다고 생각 하셨나보다.
(채팅하면서 느낀 것)
나두 인정한다. 내가 살아온 평범하지 않은 것들이 나를 애 늙은이로 만들었다는 걸.
한때는 나도 고민하고,싸우고,죽자사자 매달린 일도 많았는데...
결국 현실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일의 꿈을 위해서 오늘을 희생시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
나이가 들면서 어른들의 말씀을 더 많이 경청하게 된다.
많이 배워서가 아니라 그분들이 체험하신 소중한 것들이 곧 삶의 지혜이기에....
긴 연애 기간에도 불구하고 갈등에 빠져 시댁 식구들을 싫어하고,
남편을 미워했던 적이 있다.
첫 친 손주라고 너무 아들을 이뻐 하시는 것도 싫었고,
둘째를 어떻게 보느냐며 둘째 애 임신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시는 것도 싫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시어머님이 살림해 주시는 게 부담스러웠고, 아이들에겐 놀아주지 못해서 미안했고,
남편에게도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결국은 그것이 우울증으로 변해 만만한 남편이 아들을 안는 것조차 싫어했다.
(내가 배 아파서 낳은 아들이라고..)
둘째를 가져서는 극에 달했던 거 같다.
애를 낳기전에 1정교육을 받기위해 청주까지 출퇴근 했는데, 심한 입덧과 멀미로 글자가 겹쳐 보이고
나중엔 양호실에 누우면서까지 포기하지 않고 미련을 떨었었다.
(결국 남은 건 망가진 몸이었다. - 그땐 왜 슈퍼우먼이 되려고 했을까?)
이런 내가 긍정적으로 변한 건 둘째를 낳으면서부터다.
아이를 낳고 무심결에 거울을 본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눈밑 가득 까맣게 깔린 기미 때문에....
너무 놀라 울고 있는 나를 달래려는 남편의 얼굴을 본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남편 얼굴엔 나보다 더 많이 기미가 깔려 있었으니..
(아내가 산통을 하는 동안 얼마나 마음을 졸였으면...)
그때부터 난 *부부일심동체* 라는 말을 믿는다.
그리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게 되었다.
나는 사실 가진 게 별로 없다.
집은 임대 아파트, 부실한 몸, 다시 시작해야 되는 생활이다.
맞벌이 해서 번돈은 사업실패로 붕~~
쇼핑도 안 즐기고, 미장원 가는 걸 싫어해서 생머리, 옷은 진바지에 간편한 티, 가장 잘 가는데는 시댁과 도서관 정도....
남들이 보면 시시하지만 그래도 난 행복하다.
< 좌우명은 꿈을 가지되 현실에 만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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