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말자

2005년 1월 제천에서...

안글애 2016. 12. 30. 13:27

가는 날이 장날.

예정에 없는 일을 하는 건 여유이고 반항이다.
지겨운 현실을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다든지, 아니면 지루한 현실을 벗어나 뭔가 새로운 분위기를 느끼고 싶을 때이다.
여유를 부릴 여유가 없는 나는 어제 반항을 했다.
그저 귀찮아서 아니면 변화가 두려워 현실에 묻혀 지내다 문득 반항 심리가 돋았나 보다.
제천에 갔다.
시승차를 가지러 간다는 핑계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핑계였다.
모처럼 기차를 타려니 가슴이 쿵쾅거렸다. 따지고 보면 기차 탄 지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닌데, 목적 없이 계획 없이 실행된 일이라....
낭만으로 일컬어지는 기차여행은 참으로 오랜만에 하는 것이다.
역무원 아저씨의 모습도 정겹고, 옆에 앉은 왕아들의 모습은 연애시절의 청년 모습이다.
기차는 나를 추억여행으로 이끌었다.
학창시절 주말과 월요일마다 타고 다녔던 기차, 곰신이 이였을 때 목포까지 면회를 갈 때 타고 다녔던 기차, 주말부부를 하며 기차를 타고 부산을 드나들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 인생에 정기적인 기차 탑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가는 공부 모임에 기차를 타고 가기 때문이다.
기차는 멀미 심한 나에겐 더없이 좋은 교통수단이라 앞으로도 좋은 벗처럼 곁에 있을 것 같다.

왕아들은 잠이 들었다.
목행, 삼탄, 봉양, 제천
차 타자마자 끝난 여행 같아 아쉽다.
볼 게 많아서, 떠올릴 게 많아서라고 아쉬움을 달래며 역사를 빠져 나왔다.
어디가면 핸들을 잡고 있어야 하는 왕아들은 오늘만큼은 내 손을 잡고있다.
시장 통에 들어서니 와글와글 시끌시끌이다.
제천 장날이란다. 흐흐~
와~ 충주보다 훨씬 더 정겹고 잔치 분위기가 난다.
‘반찬거리나 살까?’ 아줌마 근성으로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들고 다니기 힘들다는 핑계로 주머니를 여몄다.
그래도 그냥 가기 아쉬워!
난 찐빵 튀긴 걸사고, 왕아들은 좋아하는 꽈배기 튀김을 사서 들고 다니며 먹었다.
크크~ 못 말려!

“어, 잠깐만 저거 뭐지?”
여러 사람이 서있는 곳을 뚫고 들어갔다.
“와~ 골동품이잖아. 풍로도 있고, 촛대도 있고, 도자기도 있네.”

요즘 나는 너무 많은 걸 가졌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물건들한테 미안해 질 때가 있다. 모든 물건은 다 쓰임새에 따라 쓰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방치 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서랍장 가득 담긴 옷을 볼 때는 몸이 서너 개라서 골고루 걸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화장대를 보면 나갈 일도 없으면서 화장을 한다.

인간의 기준으로 만든 쓰임새가 정해진 물건들이지만, 나도 인간인 관계로 물건 씀씀이대로 써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생필품 외에 더 이상의 물건은 사지 말자. 더 이상의 책임감을 만들지 말자.’ 하면서도 순간 욕심 때문에 옷을 사고, 책을 사고, 물건을 산다.
아주 인간스러운 현상인가?

골동품을 보니 또 욕심이란 놈이 꿈틀거린다.
불상에 손이 가는 순간
“가자.”
매몰차게 현실적인 왕아들 말에
‘그래, 넌 내 물건이 아니야. 좋은 사람 만나 네가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
불상에게 안녕을 고했다.
마음 한구석이 서운하고 시원하다.

시승차를 타고 오면서 모처럼 삶의 의미를 생각해 봤다. 결론 없는 생각이지만 이 순간은 삶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나의 고민이 현실을 되짚어 보게 한다.
나의 쓰임새는 무엇일까?

제천 가는 날은 장날 이였다. 장날이 내 인생을 되짚어 보게 하였다.


'잊지말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들 중학생 때 이야기  (0) 2016.12.30
우수한 한글...김대중이야기  (0) 2016.12.30
2005년 3,23 엄마랑 팔짱끼고서...  (0) 2016.12.30
2005년 4월13 - 흰멍이책  (0) 2016.12.30
이렇게 살았지...  (0) 2016.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