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말자

아들 중학생 때 이야기

안글애 2016. 12. 30. 13:31

우리 아들은 아침마다 눈썹을 그린다.
이국적인 모습, 오뚝한 코, 쌍꺼풀진 눈, 늘씬한 키....제 아빠의 장점은 하나도 닮지 않았는데,
눈 꼬리가 퍼진 눈썹은 영락없는 아빠 눈썹이다.
어릴 적엔 안 그랬는데 사춘기가 되더니 그렇게 변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뻐드렁이는 안 닮았으니....ㅋㅋ
아무튼 피는 못 속이는가보다.
“야, 눈썹 꿈틀거리면 안돼! 지그시 감고 있어.”
아들은 무방비 상태로 얼굴을 들이대고 있다.
‘요 녀석 요즘 컸다고 뻗대는데 짝짝이로 그려 줄까? 코 한 번 쥐어 줄까?’
“엄마, 다 그렸어?”
“어유, 깜짝이야!”
엉큼한 속셈을 들킨 거보다 우엉우엉 낮고 굵직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이제 익숙해 질 때도 됐건만 왜 이리 낯선지.
내 아들이 맞나? 다시 한 번 아들 얼굴을 쳐다본다.
우둘투둘 여드름투성이의 아들 얼굴이 코앞에 보인다.
피싯~ 웃음이 난다.

이 녀석이 요즘 다 컸다고 큰소리치는 놈인가?
시험 전 공부 상태를 묻는 내게
“엄마가 알아서 뭐해? 내 공부는 내가 하는 거지.”
하였겠다.
“요샌 다 친구들이랑 가서 옷 사 입어.”
“요즘 중학생들은 다 그래.”
라며 엄마를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했겠다.
한 번 쥐어박으면 바락 대들려나?
아직도 귀여운 얼굴인데, 뽀뽀 한 번 해 줄까?
솔로 슥슥 마무리를 하며 갈등한다.

아침마다 주어지는 짧은 시간.
아들 눈썹 그리는 시간은 대견함과 서운함이 내 속에서 한바탕 전쟁을 치루는 시간이다.
그런데 언제나 결론은 같다.

'요놈아, 니 눈썹 그려 줄 여자 생기기 전에는 넌 내 손안에 있다.^^'



오늘 아들들이 시험 보는 날입니다.
알아서 하는 아들들인데
엄마는 쓸데없이 잔소리를 해 댔네요.
(잔소리로 엄마 티를 내고 싶었나 봅니다.)
전에 쓴 글 보면서 마음을 다스려봅니다.

그리고
"아는 것 안 틀렸지? 수고했다."
아들들이 오자마자 할 말을 미리 연습해 봅니다.


아들들의 아르바이트. (2001년 8월..)

방학을 하면서 아들들이 아르바이트로 신문을 돌리고 있다.
큰애 친구까지 세명에게 고층 아파트만 맡겼다.
아침마다 명단보며 챙겨 주기 귀찮고, 깨우기 귀찮지만 경험이려니 생각하기로 했다.
전에도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도와 준다고 며칠씩 돌리긴 했는데,
이번엔 한달을 돌린단다.
고층은 한달 돌리면 부당 1,500원이다.
한 녀석당 15부 정도니....기껏해야 22,500원이다.
혹시나 빼 놓을까, 비오는 날은 아이도 젖을까.... 걱정이였는데,
한부도 배달 착오없이 잘 돌리고 비 오는 날은 모자를 챙겨 쓴다.
달력에 동그라미 하나가 더 늘때마다 아이들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애궁~ 고까짓 돈 가지고....'
기뻐하는 아들들을 보면서 아르바이트 하던 때를 떠올리며 추억사냥을 한다.
왕아들은 다방에서 주방 아르바이트 해서 나에게 파카를 사 줬었지. 그 다음엔 스카프를 사 줬고.... 항상 받기만 하던 나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왕아들과 친구들에게 한 턱 내고 마냥 뿌듯해 했었는데....

이번 아이들 월급은 저희들 나름대로 쓰도록 할 생각이다.

아들들 용돈은 아버님이 주신다.
한달에 한번 흰봉투에 '홍00, 홍00' 이라고 혀 빼물고 손자들 이름을 쓰시곤 새 돈으로 바꿔다 10,000원씩 넣어주신다.
또 주말마다 올라가면 2,000원씩 주시고........
아이들은 그돈으로 군것질도 하고 모았다 저금도 하며 준비물도 산다.
용돈 받을 땐 큰애가 아기때부터 입에 달아온 말 월급(?)을 받는다고 한다.
"녀석, 일도 안하고 월급을 받냐?"

이번 아르바이트로 울 아들들은 진정한 월급을 받게 됐다.
진정한 월급을??

음~~
그 돈 생기면 뭐할까?
행복한 고민에 빠진 아이들을 보고 있는 것은 숨겨둔 곶감 생각하는 것 만큼이나 행복하다.

 

                                                 
             왕아들이 상가집에 간다기에 밤10시가 넘어서 따라 나섰다.
연이틀 회식을 해서 새벽에 왔고, 당직이라 9시까지 근무해야 하니 부조금만 내라 했건만......
아무튼 말동무가 되어 주기 위해 동승을 하게 됐다.
청주에 도착하니 11시.
운전 중에 잘 수 없어 조문하는 사이에 자려고 했는데......
내려서 음식까지 먹다보니 11시 30분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12시가 훌쩍 넘을 시간이다.
웬일인지 무뚝뚝한 큰넘이 전화를 했다.
"얘가 부모도 챙기네. 좀 자상해 지려나 봐."
"엄마가 늘 집에 있으니 그렇지 없어 봐. 수시로 찾고 난리칠 걸."
정말 그럴까?
며칠 째 잠이 부족한데다 멀미 기운까지 들어서 집에 오니 어질어질하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큰넘이 빨리오라고 컴에 앉아 손짓이다.
이유인즉 옥션에서 맘에 드는 옷을 골랐는데, 어떻게 사는건지 알려 달라는거다.
"너, 그래서 엄마 기다렸어?"
순간 부아가 끓어올랐다.
뜬끔없이 웬 벼락인가 싶은 아들은 눈을 꿈뻑이며
"엄마, 나 용돈으로 살거야."
돈 걱정부터 한다.
순간 큰넘의 요즘 행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맘에 안 든다고 해서 동생 줬던 옷을 제 맘대로 입고 다니다 못 입게 한 것(동생이 키가 더 커서 끌고 다녀서 바지길이가 짧아진 옷은 못 입는다.) 축구화도 되고 일반운동화도 된다며 샀던 신발이 몇 번 신지도 않고 신발장에 모셔져 있는 것(지금은 발이 커서 맞지도 않을 것이다.) 맘에 드는 가디건이 있다며 사 온 옷이 친구가 입던 낡아 빠진 옷이었던 것(이미 돈을 치룬 옷이라 바꾸라는 말은 못했다.ㅠ.ㅠ)
기타등등 기타등등......
게다가 낮에는 다 뜯어진 교복과 떨어진 단추를 줘서 당황하게 만들었겠다.
(싸움도 잘하고 장난도 심하다. 그래서 난 떨어진 옷을 볼 때면 덜컥 겁부터 난다.)
야단을 칠까? 어쩔까? 한참을 뒷베란다에서 서성이며 고민했다.
자, 그럼 나는 어땠을까?
갑자기 동네 친구랑 토라져서 십몇년 동안 말도 안 하고 친구 집 앞도 지나치지 않았던 때가 생각났다.
(학창시절 얼굴만 보면 서로 외면하곤 했다. 그러다 사회인이 되고부터는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아는 척을 했다.ㅋㅋ)
고등학교 가는 줄 알고 잔뜩 기대했던 아버지에게 원서까지 내 놓고 안 가서 야단 맞았던 때도 있었지.
식구 많은 집에 책 좋아하는 친구를 데리고 와서 다락방을 점령했던 때도 있었다.
(다락방은 문이 안방이랑 연결 돼 있었다. 밤늦도록 책을 보다가 쉬~가 마려워 어둠 속을 더듬거리다 아버지 다리나 엄마 팔을 밟기도 했다.)
기타등등 기타등등
결코 나도 큰넘의 행실에 만만치 않았다.
"야, 어디 봐."
새벽 1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아들과 컴에 앉았다.
사이즈 재고, 입찰하고......
'지가 지돈으로 산다는데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 있나, 실수도 해봐야 다시는 안 하지. 내가 아무리 바른 길 좋은 거라 해도 스스로 느끼지 못하면 가치가 없는거여.'
끙얼끙얼 중얼중얼 궁시렁궁시렁
"야, 내일 낙찰 받으면 신청하자."
호기있게 말하자 아들 얼굴이 밝아진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는건데 난 내가 큰 인심이라도 쓴 것처럼 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것처럼.)

이제 아들 옷을 기다리고 있다.
처음 인터넷으로 제가 고른 물건이라 기대가 크다.
맘에 들지 않아서 아직도 엄마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으면 싶기도 하고, 맘에 들어서 제 역량을 높혔으면 싶기도 하다.

요즘 사춘기에 접어드는 작은넘도 제 주장을 펴느라 따지곤 하는데, 말도 조리 있게 하고 상대방 분위기 파악을 하기에 충돌까지 가는 예는 극히 드물다.
그러다보니 무대뽀인 큰넘만 야단을 바가지로 맞는다. ㅋㅋ
하루에도 12번씩 미워지는 아들 넘들 떡 하나씩 더 줘야겠다.
그러다보면 나도 살이찌리라.
(난 5춘기라 감정의 기폭이 더하니 말이다. 스스로 미워질 때 떡 하나씩 더 먹어야지.)
그리고 아들놈들이 이뻐지리라. 왕아들까지 덤으로....

 

 큰아들은 기말고사를 못 봐야 된단다.
참, 기가 막혀! 못 봐야 되는 시험도 있나?
웃음밖에 안 나온다

사실은 이렇고 저렇다.
아들은 외국어고등학교에 입학이 결정된 상태라 이번 시험을 잘보면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는 같은 학교 애들 점수를 갉아 먹는 게 된다는거다.
반신반의 했는데 정말이란다.

그래서 우리 아들은 땡~ 잡았다.

살면서 숱하게 시험을 치뤘다.
대학 때는 일주일마다 과목 별로 치뤄대는 시험 때문에 집에 올 시간도 없었다.
(피아노가 아길레스건이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입학 전 피아노를 배웠는데 난 그러질 못했기 때문이다. 악보도 떠듬떠듬 손가락은 뻣뻣, 조별로 치루는 시험이라 한 명이라도 틀리면 통과 못하니 더 곤욕스러웠다. 그래서 난 언제나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당구 연습한다며 지나가는 사람들 머리통 때리는 연습을 하던 친구도 있었는데...ㅋㅋ)

임용고사를 준비할 때는 퇴근하고 피아노 학원 다니고, 그림 그리고, 무용하고.....
그랬는데 그랬는데....
(안전한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 발악하던 내 20대의 모습이다. 이 때만 지나면 만사 순조로울 줄 알았다.^^)

이젠 공모전에 글 낸다고 시험 아닌 시험을 치루고 있다.
난 언제나 이 지긋지긋한 시험에서 해방 될까?
장담하건데
(좀 더 일찍 깨달았으면 좋으련만 살아가는 게 죽을 때까지 일 만드는 거고, 죽을 때까지 아픈 거고, 죽을 때까지 일하는 거란 걸....)

살아있는 한 시험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 같다.
(만갈래 천갈래 엉클어진 이야기를 담고 다니는 나. 머리만 큰 가분수가 아닌 지 자꾸 거울을 들여다 보게 된다. 비틀 비틀 정말 가분순가벼~)
그래서 아들놈이 한없이 부럽다. 비록 며칠간의 여유지만 말이다.

아 그러고보니 나도 여유를 가졌던 때가 있었다.
시험을 그냥 봐 보자고 본 때가 있었다.
점심은 자취하는 친구집에서 만두국 끓여 먹고, 
늦게 오면서도 전혀 걱정이 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남들은 잘 보려고 아둥거리는데 난 여유롭게 아는문제만 풀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치룬 시험 성적이 다음해 대학 가자고 맘 먹고 치룬 시험보다 점수가 잘 나왔다. 이런 아이러니까 또 있을까. ㅋㅋ)

왜 지금 그때의 여유가 생각나는걸까?


'다툼'
이라는 글자는 뜻과 상관없이 예쁜 글자다.
반듯반듯하고 빈 공간이 없어서일게다.^^
이 예쁜 글자가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형이 오라니까 친구들하고 모임에 못 갔잖아."
작은놈이 참았던 울음을 터트린다.
엄마 얼굴 보면 울까 봐 제방으로 후닥 들어 간 건데,
눈치 없는 엄마가 쪼르르 달려 가 물었던거다.
"왜 일찍 왔어? 오늘 늦는다고 했잖아?"
큰넘도 질세라 한 마디 한다.
"오라고 할 때는 안 오고......"
"친구들 하고 잠깐 얘기하고 가니까 없는 걸 어떡해!"
"같이 차 타고 다니는 친구들이 택시 잡았는데 어떻해? 타야지. 그리고 네가 알았다고 하길래 집으로 오는 건지 알았지."
.
.
꽥꽥꽥 돼지 멱 따는 소리가 이어진다.
팔장을 끼고 아들넘들의 이야기를 듣자니까 뭔 얘긴 줄 알겠다.
큰넘은 학교 끝나고 학원에 가는데, 동생 교복 윗도리를 입고 싶었나보다.
교문 앞에서 만나서 옷을 바꿔 입으려고 했는데.....작은넘은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왔는데, 기다릴 줄 알았던 형이 없어서 집까지 온 것이다.
(학교랑 집이랑은 각각 시의 대각선에 위치해서 차를 타고 다녀야한다.)
"야, 그럴 땐 집까지 오지 말고 친구들이랑 갔어야지. 휴대폰은 폼으로 가지고 다니니?"
큰놈이 자기 교복을 입고 학원에 가면 될것이라는 생각에 한 말인데, 작은 놈은 야속했나 보다.
"엄마가 뭘 몰라서 그래. 그럼 형이 이따가 가만둔대? 그러지 않아도 말 안 들으면 죽는다고 하는데......"
"너도 욕했잖아. 엄마한테 이르고......"
큰놈도 변명을 해댄다.
"내가 이른거야? 엄마가 물어서 대답한 거지."
이르는 게 무척 비겁한 짓이라는 듯 두 놈이 한마디도 지지 않는다.


꽤애액~
"이제 할 얘기 다했니? 마음 풀렸어?"
"......"
두 놈은 말이 없다.
"엄마는 무슨 문제가 생겨서 얘기하는 건 이르는거라고 생각 안해. 이르는 건 상대방이 없는 상태에서 얘기 하는거지. 그리고 오늘 일은 엄마가 먼저 물은거고. 큰 아들아, 너 동생한테 고맙거나 미안하지 않니?"
"고맙기는 한데 잘못한 거 아니야."
큰놈이 마지못해 대답하자
"거 봐, 자기는 잘못 안 했다잖아."
작은 놈이 핏대를 세운다. 희생하면서 따라왔는데 형이 그걸 고마워 하지 않으니 속상한가 보다.
"엄마는 언제나 그렇듯 이럴 경우는 둘 다 잘못 했다고 생각해. 시작이 어찌되었든 욕이 오고 갔으니까. 너는 욕한 거 잘못하지 않았어?"
"그거야 뭐, 형이 그렇게 만들었잖아."
어릴적부터 아들들이 싸울 때는 늘 둘을 같이 벌 받는 의자에 앉히곤 했다. 부모랑 지내는 시간보다 두 형제가 지내는 시간이 많은 게 인생이니, 어느 한 쪽에 마음의 상처가 남으면 안되겠다 싶어서다. 벌 받는 의자에 앉혀두면 엉덩이가 배겨서인지 금방 '미안해, 미안해!' 하며 사과하곤 했는데, 크면서부터 잘잘못을 분명히 따지고 싶어하니 힘들다.
"형이 고맙다고 한마디 했으며 끝났을 것을 괜히 열 낸 거 같지 않아?"
"그건 그런데 난 엄마가 형 말 무시하라는 말 싫어!"
"싫지, 하지만 싫어도 받아들여야 해. 윗사람 말이라고 무조건 따라야 된다고 생각해? 너는 엄마가 하라는대로 다 하니? 그럼 할머니가 너 교회 다닌다고 뭐라하는데, 할머니 말대로 너보고 교회 다니지 말라고 할까?"
"할머니 말 무시해!"
할머니 잔소리가 어느 정돈지 아는 큰아들의 말이다.
"거봐, 그러니까 동생도 네 말 무조건 들을 필요 없는거지?"
"응, 알았어."
그제야 작은 놈이 수그러 들었다.
한바탕 전쟁을 치른 것처럼 몸이 나른하다.

작년에 동서네 돈을 끌어 다 우리 빚을 갚았다.
우린 원하지 않았는데 시부모님께서 그렇게 하셨다.
달랑 한 채 있는 집을 동서네한테 넘기는 대신....
우리가 대출금 갚는 거 버거워 보였나보다.
그렇게 하는 게 싫어 동서랑 의논해서 그냥 돈을 꾸어 오기로 했다.
3년 안에 갚기로.....
그런데 동서가 마음이 변했다.
당장 이전하겠단다.
원래대로 시부모님이나 동서네는 그렇게 하기로 했던거니 별상관 없지만,
우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동서가 그런 마음을 직접 우리한테 말했으면 덜 했을텐데,
한치 건너서 들었으니......
생각 같아서는 안 보고 살고 싶다.
아이들 '다툼'을 보니 그래선 안되겠다 싶기도 하다.
난 이렇게 철이 드나보다.
부디 '다툼'이라는 글자가 이번만큼은 예쁜 모양만큼 제구실을 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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