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츠 잼펠 증후군
“뭔 병명이 강아지 이름이랑 포도이름 짬뽕한 거 같애.”
낯선 병명을 듣는 순간 난 스피츠랑 캠벨 포도를 떠올렸다.
단어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개연성이 전혀 없는데······
나의 엉뚱함이 고스란히 나타나는 경우이다.
처음부터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탓에 병명에라도 딴죽을 걸고 싶었나 보다.
요즘은 내가 글 쓰는 사람인지 까맣게 잊고 산다.
{이것도 곧 지나가리라}는 명언을 그럴 듯 하게 포장해서 ‘젊어서 놀자’ 면서 위안을 삼고 있다. 그러던 내게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이란다.
촬영 요청을 해 왔지만 그 프로를 한 번도 본 적 없어서 별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핑계 핑계 대면서 즐기고 있는 일상의 리듬이 깨지는 것이 싫었다. 적당히 둘러대고 거절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내 작품을 읽은 아이가, 그것도 희귀병을 앓는 아이가, 주인공인 강아지와 작가를 보고 싶단다. 작가로서의 사명감이랄까? 작품에 대한 애정이랄까? 아무튼 요상한 기분이 되어 거절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승낙한 것도 아닌 채 하루가 지났다.
웬일인지 방송국에서도 연락이 없다.
‘잘 됐다. 그냥 없던 일로 됐나 봐. 시큰둥하게 대해서 그러겠지.’
그러면서도 그 프로그램이 궁금했다. 이름도 긴 그 프로그램이······.
인터넷 방송을 보게 되었다. 아들들 시험공부를 핑계 삼아 컴퓨터도 멀리하는 관계로 왠지 낯설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을 찾아보니 다행히 다시 보기 기능이 있었다. 게다가 무료다.
“뭐야! 한 시간씩이나 하는 거잖아. 에이, 눈 아플 텐데.”
걱정이 앞섰다.
정말 눈이 아팠다. 아니 뜨거웠다. 코는 맵고 목이 메었다. 마음이 아파 나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줄 흘렸다.
훌쩍 훌쩍~ 팽~ 그러다보니 프로그램이 끝났다. 감동에 젖어 있는 동안 한 시간이 흘러 간 것이다.
요즘 들어 이렇게 울 일이 있었던가? 머리가 개운했다.
‘난 행복한 사람이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전화기로 다가가 ARS 모금 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다른 사연을 보았다.
어느것 하나 가슴 아프지 않은 사연이 없었다.
기꺼이 촬영에 응하겠다고 전자우편을 보냈다.
짧은 시간 안에 아이에게 줄 글을 쓰느라 낑낑댔지만, 글을 쓰면서 아이와 난 친구가 된 것 같다.
그 아이 원식이가 사흘만 있으면 우리 집에 온다.
먼 길이라 무리가 가지 않을 까 걱정이다.
하지만 병 때문에 갇혀 지내다시피 하는 원식이에겐 설렘 가득한 행복한 여행일 것이다.
근육이 수축되어 얼굴 생김새도 이상하고,
잘 걷지도 못하고, 등이 굽고, 구강 근육에도 이상이 있어 말도 잘 못하고,
먹는 것도 잘게 썰어줘야 먹을 수 있다는 아이.
키도 작아서 동생뻘 되는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는 아이.
원식이.
{가장 싫은 건 죽는 것, 가장 힘든 건 사는 것} 이라는 생각이 깊은 아이.
마비된 눈 둘레 근육 때문에 눈 감는 게 어려운 원식이는
"눈싸움이라면 자신 있어요." 하며 엄마를 웃기려고 노력하는 기특한 아이다.
우리 친구들도 원식이를 만나 보세요. 그리고 아픈 아이들에게 많은 관심 가져 주세요.
그냥 전화기 꾹꾹 누르면 되는구만유~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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