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말자

밤 따러가자, 추억 따러 가자.

안글애 2016. 12. 30. 13:39

밤 따러 가자, 추억 따러 가자. (동문 게시판에 올렸던 글 퍼 왔음 2005년 9월 글)

태풍 ‘나비’가 오니까 마음이 급해진다.
며칠 전 아파트 입구에서 햇밤이라고 파는 걸 봐서 더욱더 그렇다.
어머님 댁 근처에 임자 없는 밤나무가 여러 그루 있다.
시댁에 같이 살 때는 종종 그곳이 아이들 자연학습장이었다.
이제 분가해서 살고 아이들은 중학생이라 좀처럼 그곳에 가 볼 시간이 없다.
그런 내게 기회가 왔다.
오늘은 시할아버지 제사이다.
아침 일찍 온 가족이 함께 나왔다.
왕아들은 회사에 난 시댁에 아들 둘은 학교에 갔다.
어머님이 미리 장 봐다 다 손질해 두신 덕에 전만 부치면 된다.
제사상을 그리 간단히 하느냐고 하실 분들이 많겠지만 내가 할 몫이 그것이라는 말이다.
아니 밤에 상 차리고 치우는 일도 해야 한다.
어머님은 며칠 전부터 시장을 훑으시며 좋다는 것만 사시고, 다듬고, 씻고······.
떡 찾아오고, 조기 찌고, 그 와중에 아버님은 병풍 챙기고 청소 하신다.
저녁 먹고 나서는 나물 볶고, 무치고, 탕국 끓이고······
시작은집 식구들이 일찍 오면 같이 저녁 먹고, 늦게 오면 제사 지내고 먹는다.
물론 난 전 부치고 점심 먹으면 집에 온다.
아침에 못한 청소를 하고, 내일 아이들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또 이렇게 컴도 한 후 밤에 다시 올라간다.
오늘은 집에 오기 전에 점심은 부침개로 때우고 밤을 주우러 갔다.
놀이터를 지나치며 아들들이 삐걱거리며 타던 그네에게 미소 짓고, 어머님이 부치는 보자기만한 밭을 내려다봤다.
“어? 도라지꽃이 폈네.”
비탈길을 종종종 내려 와 뒷집 할아버지 밭을 둘러봤다. 개울가에 자리한 밭에는 온갖 곡식들이 자라고 있다. 눈길이 가장 많이 머무는 것은 밤나무다.
뒷집 할아버지는 밭에 울타리까지 쳤으니 아무나 주울 수 없다. 하지만 그 밤은 토종밤이라 도토리만하지만 밤맛 하나는 끝내준다.
뒷집 할아버지는 울 아들들을 늘 왕자’라고 불러 주셨다. 그리고 밤을 털면 한바가지 꼭 가지고 오셨는데, 그 관행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 안 주워도 맛 볼 수 있는 밤이다. 밭둑을 타고 내려오니 물소리가 쏴아 난다. 요즘 비가 와서 개울물이 불었나보다.
“여긴 오리형과 오리제의 연못 이였는데······.”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있을 때 아이들과 늘 붙어 다녔다. 직장일 하는 엄마라 늘 미안했던 탓이다. 그때가 아이들이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때였다. 요즘은 컸다고 같이 가자고 해도 안 간다. 하여튼 장에 가서 오리 두 마리를 샀다. 큰아들 오리는 ‘오리형’ 작은아들 오리는 ‘오리제’ 라고 이름 붙여주었었다. 그것이 아들들이 처음으로 저희들이 보살펴 줘야 하는 생명이었다.
모이 주고, 개울가에 데려가 헤엄치게 하고 집에 가두는 일까지 저희들이 했다. 그래선지 오리들은 아들들만 나서면 뒤뚱거리며 뒤를 따랐었지.
개울 건너 편 논에는 벼 이삭들이 공손하게 고개 숙이고 있다. 쑥 뜯던 논두렁과 냉이캐던 밭두렁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개울가에는 풀들이 빼곡한데 벌써 계절을 알아챘는지 불그레하다. 그중 ‘여뀌’라는 풀을 한참 들여다봤다. ‘며느리 밑씻개’랑 많이도 헷갈리던 풀이다. 다시 보니 가시 있는
‘며느리밑씻개’ 보다 순하고 부드럽게 생겼다.
아직 밤송이는 진초록이다.
‘연두색이 되었다가 갈색이 돌아야 밤이 여문 건데······.’
그냥 돌아서자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떨어진 밤송이들을 보였다. 헤집어 보았더니 아직 밤 껍질이 하얀 덜 여문 밤톨이다. 개중에는 떨어진지 오래 된 것도 있는데, 가시껍질이 말라서 밤톨이 갈색으로 변한 것도 있다.
개울을 풀쩍 풀쩍 뛰어 넘으며 떨어진 밤송이들을 주워 깠다.
“아얏! 찔렸다.”
흰장갑이 빨갛게 물드는 것을 보고 피싯 웃었다.
‘난 이렇게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끼고 싶은 건지도 몰라.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고 아파서 끙끙대고······. 삶이란 이런 거야. 아프고 힘들고 뭔가 해야 하는 일들이 끊임없이 반복 되는 거. 그런 게 없다면 삶도 끝이지.’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도토리만한 밤들을 한 움큼 주웠다. 추억은 한 자루 주워서 걸머멘 거 같다.

[못 다 쓴글]
밤은 또 다른 추억이 많지.
두 아이 모두 창암국민학교 근무 때 가졌는데, 학교 진입로가 밤나무 숲이였어. 입덧이 한창일 때도 밤은 좋아해서 밤으로 끼니를 대신 했었지.
게다가 복이 많아서 교장 선생님이 여자였어. 그 분은 막둥이 유치원 교사를 '아가'라 부르며 밤을 주워다 주셨어. 그걸 보고 아이들도 주워 오고.....
나중에 울 집에 오신 선생님들이 아이들이 '밤톨' 같다고 했었다. 푸하하하~

아, 밤 먹고 싶다. 추억도 더 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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