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학생·주부·직장인 거리로 / 촛불로 추위 녹이며 서로 응원해 / 수십∼수백만 군중 평화집회 선례 / 청와대 100m 앞까지 진출하기도 /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교훈 / 불의한 권력에 항거한 시민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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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촛불집회(11월5일)에는 20만명이 광장으로 나왔다. 그 사이 최씨가 귀국하고 검찰에 출석했지만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져만 갔다. 검찰은 최씨에게 하루 정도 시간을 벌어줬고, 박 전 대통령은 신임 총리 등 개각을 발표했다. ‘꼼수’를 쓰고 있는 게 뻔히 보였다.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역대 최저치인 5%로 추락했다. 그런데도 박 전 대통령은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나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이때부터 촛불집회 인원이 급격히 늘면서 평범한 학생, 주부, 직장인이 참가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촛불이 타오를수록 집회와 청와대의 거리가 좁혀졌다. 1, 2차 촛불집회 때 청와대와 거리는 1300m였으나, 이후 900m(3차), 500m(4차), 200m(5차)로 줄더니 6차 집회(2016년 12월3일) 때는 불과 100m 떨어진 거리에서 집회가 개최됐다. 경찰은 청와대 인근 집회를 금지했지만 법원은 국민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촛불집회를 두고 “대통령에게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하는 집회”라며 “조건 없이 허용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수십만∼수백만 군중은 집회에서 질서를 지켰다. 친구와 연인, 가족들은 영하의 기온에 촛불로 추위를 녹이며 노래를 부르고 서로 응원했다. 연행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장 경찰은 불법집회 경고 대신 “나라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여러분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이런 때일수록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하고 경찰 안내에 따라 이성적으로 행동해 달라”고 호소했다. 국민들은 경찰차에 ‘꽃 스티커’를 붙이며 화답했다.
촛불집회는 평화적이면서도 주도면밀했다. 특히 국회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에 대한 가결을 할 때 지혜가 빛났다. 당시 정치권은 대통령 탄핵을 두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친박(친박근혜) 색채가 강한 여당은 분열했다. 교착된 국면이 길어지자 촛불 국민들이 직접 정치인들을 압박하고 나섰다. 국회를 둘러싼 촛불을 본 정치인들은 그제서야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서둘렀다. 지난해 12월9일 국회는 탄핵안을 가결했다. 찬성 234명, 반대 56명, 기권 2명, 무효 7명. 그때 국민들은 광장에서 외쳤다.
촛불집회는 3차 집회(2016년 11월12일)에서 처음으로 100만명이, 6차 집회(2016년 12월3일)에선 우리나라 대중 집회 사상 최대인 232만명이 모였다. 촛불집회를 이끈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추산한 누적 참가인원은 1500만명. 단순계산으로 하면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촛불을 든 것이다.
헌재의 탄핵 결정으로 촛불집회는 이제 소강 국면에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박 전 대통령 등 부정부패 혐의자들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도 본격화하기 때문이다. 국민들 역시 나라가 안정된 만큼 이제는 촛불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희미해지는 촛불을 뒤로하는 국민들의 마음에 하나의 교훈은 더욱 또렷해지고 있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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