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말자

선자령 등반 이야기 외.... 2007년 3월 12일

안글애 2016. 12. 30. 14:02

팔봉산 노래를 하다가 선자령에 다녀왔다.

선자령은 대관령을 거쳐 올라가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람이 센 곳이란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진짤거야. 대형 풍차가 있거든 즉 풍력발전소)

신혼초 대관령 넘다가 구름에 갇힌 적이 있어서 대관령하면 그 생각부터 먼저 난다.

다행이 날이 화창, 구름에 갇힐 일을 없구나 안도의 숨을 쉬었지.

하지만 바람이 장난 아니게 세네.

가만히 서 있어도 등 떠밀어 대는 바람 덕에 몸무게를 실감 못해서 기분 좋더라.ㅋㅋ

오빠네 부부랑 동생과 조카딸, 우리부부가 산행 일행이 되어 완전 중무장을 했다.

복면강도 같은 등산마스크가 싫어 그냥 마스크 했다가 도중에서 바꿨어.

입김에 젖은 마스크가 볼에 스쳐 볼이 얼 것처럼 따끔 따금 했거든.

어린 나무를 보호하려는지 망이 쳐져 있다. 또 군데 군데 나무로  만든 방풍울타리가 있다. 멀리서 보면 무슨 장벽 같아.ㅋㅋ

전망대 여기서부터 내려갈 때는 그래도 바람이 잠잠했다.

전망대서 내려다 본 강릉시

 

우리부부뿐만 아니라 간간히 만나는 사람들도 완전 복면강도 같았다.^^

조카네랑 오빠네 부부가 도중에 포기하고 내려갔다.

나랑 내편이는 언제나 그렇듯 한 번 시작을 했으면 끝을 보자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 바람이 세서 잠깐 멈추는 것도 힘들고 뭘 먹을 엄두도 못 내겠더라.

산행보다 사진찍기가 취미인 난데 사진도 별로 못 찍었당.

바람이 좀 잠잠한 곳엔 눈이 쌓였다. 어찌나 힘들었던지 아예 눕고 싶었어. 눈이 포근해 보였거든.ㅋㅋ

내가 좋아하는 물푸레 나무 군락지. 참나무랑 같이 사이좋게 자라고 있었지.

멀리 풍차가 보인다.

이쯤에서 볼 때는 멈춰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우릴 반기는지 돌기 시작~

여기까진 그래도 참을만 했다. 우리 부부는 험한 산을 함께 타는 '역전의 용사'라 농담하는 여유도 있었지.


풀도 눕는 곳이 시작됐어. 뒤에 나무 보이지? 가지가 한쪽으로만 벗은 낙엽송.

생명의 힘은 대단해.

 

선자령은 내게 풀이던가 돌이 되라네..

끈질기던가, 묵직하라고.

머리카락 한 올도 바람이 세니 채찍이 되어 볼따귀를 후려치고,

가방에 맨 수건이 풀리기도 하고 펄럭거리며 후려친다.

전진해!

전진!

전진!

바람의 닥달에 [으뜸사냥꾼] 출간 후 탱자 탱자 놀고 있는 내가 부끄 부끄~

선자령 정상 바로 아래. 눈오면 눈썰매장이 되는 곳이라는데....

바람 앞에 폼 잡아보라고 했더니 안간힘을 쓰고 서 있는 내편이.

단단한 허벅지가 보이네.

연애 때 젓가락이라고 뼈에 거죽만 붙었다고 미덥잖아 했었는데...난 아니고..

 

지팡이도 날릴만큼 센 바람인데

어쩜 하늘은 저리도 한가한지...

뭉게구름 두둥실~

(유기견 '뭉게'를 거둔 후론 하늘을 자주 올려다 본다. 뭉게야~ 고마워!)




지팡이를 의지 해 바람을 견디며 찍은 사진들.

카메라조차 얼어서 전원이 꺼지고....그래서 더 소중한 사진.

정상서 보니 전에 올랐던 오대산 노인봉이 보인다.

(언젠가 백두대간을 종주하리라. 다짐을 해 본다. 그때 다시 보자 선자령아~)

한쪽에서만 부는 바람이면 탑 한편에 서면 바람을 피할 수 있을텐데, 휘몰아치는 바람이니 오래 서 있지 못하겠다. 그래서 정상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나보다.

내편이랑 단 둘이 정상을 차지 했다. ㅋㅋ

(어디가나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아서 한 번도 단 둘이 정상을 차지했던 적이 없다.)

내려올 때는 우리 부부는 누구보다 다정한 연인이 되었어. 마치 이인삼각경기를 하는 거 같았지.

옆에 착 달라 붙어서 오지 않으면 바람이 저만큼 휘익 날려 버리거든.

그러고보니 유감이네 다정한 장면을 찍었어야 하는데....(찍어 줄 사람이 없었당.^^)

 

발이 날아  들어다가 다시 디디려면 한참을 당겨서 휘뚱거리며 디뎌야 했지. 이 상태서 조금 연습하면 축지법도 할 수 있겠다는 농담을 하며 중간 중간 지팡이를 짚고 서서 숨을 돌리며 정상에서 내려왔다.

(그러고보니 농담은 힘듦을 견뎌내는 또 다른 힘이야.)

물푸레 나무 군락지에서 허기를 달래느라 김밥 한통을 먹었다. 내편이는 얼른 내려 갈 마음에 차에 가서 먹자 했는데 체력이 바닥났는지 견딜 수가 없어. 더운 커피랑 함께...

내려 와보니 싸 간 물을 한 통도 안 먹었네.ㅠ.ㅠ


올라갈 때부터 눈길에서 아이젠을 신으려 했는데 준비 부족으로 못 신었다.

(간편하게 착용할 수 있는 두 발 아이젠을 샀는데 너무 헐렁거린다. 추워서 끈 조정하기 힘들어.- 등산은 누구 담당이지. 앞으론 미리 체크 해. 알았지? )

내려올 때는 할 수 없이 무겁지만 착용 편한 그물 아이젠을 신었다.

포장도로에 도착해서 내편이가 벗은 아이젠을 들고 앞서간다.

(미안 했나 보다.^^)

 

나무도 바람 때문에 한쪽으로만 가지가 뻗었다.

 

복면 강도처럼 했는데도 얼굴이 얼얼하다. 눈만 빠끔 내 놨는데 다음엔 고글까지 해야겠당.

바람막이는 펄럭거려서 스키복 생각이 간절했다.

(아무리 등산복이 좋다지만 추위엔 스키복이 최고여~^^)

차 세워 둔 곳에 오니 3시 조금 넘었다.

11시 30분에 등산을 시작했으니 4시간이 안 되는 산행시간인데 열시간은 행군한 거 같다.ㅠ.ㅠ

바람만 없다면 금봉산 정도밖에 안 되는 산행인데....

오빠네 집에서 한 숨 돌리고 집에 오니 7시.

얼굴이 우둘투둘 부어 오르고 따끔따끔하다.

진정 시키기 위해 내편이랑 나란히 녹차 마스크를 하고 하얀 복면강도가 되어 잤다.

내편이가 떼어냈는지 아침에 보니 녹차 마스크가 없네. 

요런~

깜멍이가 물고 다니고 있네. ㅋㅋㅋ

 

"어이, 홍동지. 시베리아 벌판에서 무사귀환을 축하하오."

아침도 대충 빵으로 때운 내편이를 출근 시키고,

 난 다시 이불속으로...



마음을 다 잡고 도서관에 갔다.

정확히 말하면 다 잡으려고.....히히~

때는 바야흐로 봄인지라 목련이랑 벚꽃이랑 흐트러지게 폈다.

각각 한그루씩 밖에 안 되지만 그것만으로도 봄을 만끽하겠다.

도서관에 들어서면서부터 웬지 모를 두려움.

나 떨고 있니?

 

열람실에 들어가려다 발길을 돌려 나왔다.

디카를 꺼내 들고 벚꽃 밑에서 서성거리다 도서관 건물을 찍었다.

언젠가 열람실이 없다고 글 올렸던 기억이 나서 도서관 전경을 보여 드리기 위해....

누구? 숭덕님들에게....

목련은 벌써 지고 있었다. ㅠ.ㅠ

울 조카가 찍어 준 사진.^^

달콤한 ?b콘 같아.


 벚나무도 찍고 목련도 찍고 꽃만큼 아름다운 사철나무도 찍었다.

 

도서관 건물과 조경

새로 지은 말 많은 도서관

구도서관 미색 건물 이층이 열람실임 - 검정고시 준비 때부터 줄기차게 다닌 곳

정문에서 바라 본 모습

신관 2층에서 내려다 본 도로쪽..

신관 2층에서 내려다 본 구관 쪽...

미경이네 음머들과 내 사랑스러운 조카 - 울어서 올렸음^^

자칭 뽀그레인 기사라고...

 

결국 글 한 줄 못 쓰고 나왔다.

공부한다고 책을 보는데 글자들이 제멋대로 튀어나왔다 들어갔다.

그래도 점심 때까지 버텼음.

'엉덩이야 수고했다!'

내일 다시....마음을 잡으러~  (0.-)   (:-)

 (감정 표현을 제대로 못 하는 문화는 눈의 표정을 주목하고, 제대로 하는 나라는 입의 표정을 주목한다고...앞의 이모티콘은 동양, 뒤의 이모티콘은 서양이 쓰는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