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말자

탈출 2006년 5월19일

안글애 2016. 12. 30. 13:53

가끔 탈출을 꿈 꾸지.

난 늘 같은 일을 반복하는 여자들만 그러는지 아는데,

아니니?

내편이는 집이 안식처라는데, 난 가끔 감옥 같거든.

해도 해도 끝없는 집안 일.

하루 세끼 먹는 거 한 끼만 먹었으면 좋겠고, 집안 청소는 안 하고 살았으면 좋겠고, 빨래는 세탁소에.......

일만 생각하면 짜증난다.

가끔씩 일상적인 일이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안 하면 아마 미쳐 버릴거야.^^

요즘 내 마음에 바람이 든 탓인지 더 짜증스러워 탈출을 강행했다.

이틀동안 내편이 연수 가는데 따라 가기로 했쓰으~

큰놈이 수련회라 집에 없고, 작은놈은 혼자만의 시간을 은근히 기다리는 눈치라 선뜻 용기를 냈지.

 

와~

대구 가깝네.

2시간 밖에 안 걸려.

예전에 3-4시간 걸렸던 거 같은데....

내편이가 연수 받는동안 나 혼자 시간을 보내야 되는데, 아직 어디로 가서 무얼할지 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대구는 한 번도 머문 곳 없는 도시라 두려움과 설레움이 교대로 고갤든다.

"난 저쪽으로 갈게. 저녁에 봐."

내편이가 걱정할까 봐 큰소리 치고 돌아섰다.

고개가 자꾸 돌아가는데, 힘 바짝 주고 앞만 보고 걸었다.

'이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다시는 연수에 따라간다는 말 못하리라.'

오전 10시, 삼성자동차 지점 옆에 있는 가야박물관이다.

문을 닫아서 유물은 못 보지만 외관도 볼 만하다.

옛 궁궐을 본 뜬 듯 알록달록 화려한 단청을 한 기와 지붕과 입구에 떡 버티고 선 해태상.

근엄 위엄에 반하게 꼬리 부분의 털이 곱슬곱슬 하다. 크큭

정원 곳곳에 선 정승상이 근엄하다.

하하하~

자세히 보니 정승상도 날 웃긴다.

눈이 째져서 얍삭스러 보이는 것도 있고, 어깨에 힘 잔뜩 준 근엄상도 있고, 턱이 좁아서 꾀가 많아 보이는 상, 조정 회의 중에도 딴짓하는 것 같이 딴 곳을 보는 상(이게 나랑 비슷하다.).....

참, 시대는 달라도 사는 모습은 다 같은가 보다. ^^

텅빈 관리실 뒤 정원에 넓적한 돌거북이 있어 나도 모르게 걸터 앉았는데,

어째 민망해!

그 옆에는 바위에 암각 된 보살상. 나도 모르게 손이 모아진다.

(우리나라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종교를 갖고 있다는 게 실감난다.)

곳곳에 심겨진 노송은 가지가 잘린 모양이다. 보이지 않지만 뿌리도 저렇겠지.

그냥 싹 틔운 곳에 자라게 두는 게 가장 좋은건데......ㅠ.ㅠ

 

한바퀴 수박겉핥기로 둘러 봤는데도 다리가 아프다.

멋진 정원석에 엉덩이를 붙이고 휘휘 둘러보는데,

헉~ 웬 남자 팬티. ㅎㅎ

낯선도시, 문닫은 박물관. 서먹할 만도 하련만.

어라! 옐로우캡 택배차다. 저건 씨제이......

여기도 대한민국이지. 그래도 똑같은 차가 있으니 실망감이 스쳐 지나간다.

이제 슬슬 일어나 볼까.

이 시간에 거리를 점령한 사람들은 아줌마들이다.

둘씩 셋씩 보여서 뭐 하러 가는지.. 뒤 따라갔다.

대구 은행이다.

잘 됐다. 생리현상을 해결해야겠다.

낯선 곳에 무작정 갈 때 생리현상을 해결하려면 은행에 가라. 갈증이 날 때도.

여기서 시간을 때워야겠다. 충주 우체국엔 컴퓨터도 있는데 두리번 두리번 여긴 없다.

그래도 좋다.

잡지가 있으니까.

여러 민족의 성인식에 대한 글이 있네.

요란법석인 일본의 성인식, 무서운 아프리카의 할례, 돈의 개념을 알려 주는  유대인의 성인식, 담력을 실험하는 섬나라의 번지점프, 용맹성을 증명하기 위해 피투성이가 되어 점프춤을 추는 마사이족, 우리의 성인식은? 우리 아들들에겐 유대인의 성인식을 가미해서..어쩌구 저쩌구....혼자 비 맞은 중처럼 중얼중얼.

한 시간이 움켜진 모래처럼 사르르 빠져 나갔네.

 

자아~ 이젠 대구를 살펴볼까.

길 잃으면 안되니까 큰길만 따라서....가다보니 햇마늘이 나왔네. 충주는 아직인데...역시 남쪽은 남쪽이다. 또 가다보니...도시 미관 흐리는 간판들 때문에 짜증난다.

다리도 아프다. 이 근방엔 도서관이 없다는데.....

지하철? 지하철 참사가 생각 나.

볕이 따갑고, 가방은 무겁고, 다리는 아프고...

대명역에 들어 갔다.

헤헤헤헤~ 지하철 문고가 있네.

선배들이 쓴 동화나 봐야겠다.

내편이가 가까운데 있으면 점심 같이 먹자는 문자를 보내 왔네.

'나, 아주 멀리 왔어. 저녁에 봐."

안심 시키려고 문자를 보내고 책을 꺼내 죽치고 앉았다.

도서관이 없으면 어떠랴~ 책이 있고, 의자가 있고, 화장실도 있는데.....

오후 두 시. 꼬르르륵~

민생고를 어디서 해결하지.

터덜터덜 지하도를 나와서 호떡이나 사 먹을까 기웃거리는데, 개똥도 쓰려면 없다더니 여긴 없네.

홈 플러스라 대형상가인가 보다.

들어가서 순대랑 어묵이랑....도서코너에서 책도 보고...

이젠 되짚어 갈 시간.

터덜 터덜....

오 마이 갓!

내편이 연수가 일곱시에 끝난다네.

두 시간을 뭘 하지?

가야박물관에 되돌아와서 가져 온 어린이와 문학 책을 읽었다.

그 뒤로 방 잡고, 저녁 먹고, 산책하고, 무엇보다도 도서관을 발견해서 엄청 좋았다. ㅋㅋ

내일 시간 때울 곳이 정해졌으니까.

두류공원 대구광역시 시립 도서관.

이름도 거창하다.

나무도 울창한다.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스러운 경상도의 냄새가 있는 도서관에서 다음 날 하루종일 보냈다.

점심은 구내식당서 먹고, 마침 구하려다 못 구한 책을 발견해서 읽었다.

그리고 도서관 정원에서 양란처럼 생긴 꽃들을 주웠는데....집에 와서 식물 도감을 보니 오동나무 꽃이였다. 오동나무 꽃을 본 적 없어서  신기하고 이뻤다.

이담에 정원이 생기면 오동나무를 심어야겠다. ^^

 

이틀을 밖에서 보내니 집도 그립고 아들들도 보고 싶다.

 집안 일에서 해방되어 밥도 안 하고, 설거지도 안 하고, 청소도 안 하고.....가끔은 이런 생활이 필요 해.

내편이는 다음 출장 길에도 나랑 동행 하기로 했다.

짧은 탈출이 무료한 일상에 단비를 내려 주었다.

 

울 친구들은 뭐 하며 보내니?

근황 좀 올려라.

(0.-)

 


6월20일

요즘 내편이가 축구에 빠져 있어서 저도 덩달아 해롱게롱입니다.

프랑스전 때는 한 숨도 안 자고 날밤을 깠답니다.

(물론 저는 잤지요. 골 넣을 때만 침대의 울렁임 때문에 깼지요. - 내편이가 방방 뜨니까 침대도 방방~)

참 요상하게도 전 스포츠엔 지식이 없어요.

즐기긴 즐기는데....그니까 뭐라할까 옆에서 보는 사람 있으면 이것 저것 물어 보며 보는 게 재밌거든요. 근데 끝나고 나면 물어 봤던 것도 도로아미타불이랍니다.

그래서 다음에 또 보게 되면 같은 상황을 또 묻고.....ㅋㅋㅋ

다행인 건 그런 마눌 둔 내편이가 전혀 귀찮은 기색없이 다시 설명 해 주고 또 설명 해 주고....

(갸우뚱~ 설명 해 주면서 살짝 우월감을 느끼는 건 아닐까? 나 역시 초대장을 만들어 준다던가 할 때 생색을 엄청내니까요......ㅋㅋㅋ)

울 아들들은 '엄마는 스포츠맹'이랍니다.

 

내편이랑 헬스를 하고 있어요.

4-5년 전에 하다가 그만둬서 살도 찌고 몸도 안 좋아지고....

다행히 저희 아파트에 헬스 기구가 들어와서 거의 공짜로 하고 있답니다.

내편이는 쉬었다가 해도 며칠만에 다시 근육이 울뚝 불뚝 나오네요.

운동체질이라 그렇대요.

전 별 효과 없어 낑낑거리는데 온 몸이 다 아파요.

며칠씩 목, 배, 다리, 허리.....요즘은 무릎이 아픕니다.^^

아무튼 스포츠맹인 관계로 내편이에게서 다시 운동법을 배우고 익히고....

지금은 우리 아파트에서 가장 폼나게 한답니다. 물론 여자들 중에서요. ㅋㅋ

그래도 내편이 눈에는 항상 부족해 보이나봅니다.

그래선지 같이 못갈 때 혼자라도 꼭 가라고 당부를 합니다.

(몸이 안 좋다는 소리보다 운동해서 아프다는 소리가 듣기 좋은 가 봐요.)

어젠 전날 날밤을 깐 관계로 내편이는 운동을 안 갔어요.

저녁 먹고 설거지 하고 가려니 너무 늦을 거 같아 그냥 갔지요.

10시에 문을 닫거든요.

끙차 영차~ 운동을 하고 집에오니 자고 있을 줄 알았던 내편이가 없네요.

설거지는 말끔하게 되어있고....남자라 대충할 거 같은데 얼마나 깔끔한지...^^

작은 아들 말이 형이 데리러 오라해서 갔다네요. 히히~

저 입이 귀에 걸렸습니다. 설거지를 안 해도 된다니.....

(가끔은 집안 일을 안 해도 되게끔 해 주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요. 전 어디가나 설거지 당번이예요. 시댁엔 며느리니까 친정엔 올케 좀 쉬라고.....)

엄청 기분이 좋아서 되로 받고 말로 주는 짓을 또 했네요.

뭐냐고요?

내편이 발톱 깎아주고 매니큐어 발라주고......

(내편이 발톱이 보기 싫어서 매니큐어를 발라준답니다. 기분 좋을 때만....)

 

참, 이렇게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게 되기까지 많은 세월이 흘렀네요.

울 어머님의 지극정성을 당연히 받는 걸로 아는 내편이.

뭐든지 자기 먼저였죠.

입덧할 때 라면 좀 삶아 달랬더니 다 먹고 국물만 주더군요.

뭐 먹고 싶다하면 자기가 먹고 싶은 거 얘기합니다.

그러면 울 어머님 그걸 해 주시고.....장도 아들 위주로 보고...

이게 불만이 아닙니다. 엄마가 자식 위하는 데, 다 좋다 이겁니다.

그런데  나에게도 그걸 강요하더라고요.

하지만 며느리 입장이 어디 그런가요. 어른들부터 챙겨야지..

결혼 초에는 밥 먹다가 밥 더 달라면 울 어머님이 제가 먹고 있는 밥을 내편이에게 주곤 했어요.

제겐 찬밥 먹으라 하고...ㅠ.ㅠ

그뿐만 아니라 상 다 차리고 앉으면 이거달라, 저거달라 편히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없었죠.

그러던 어느날 굉장히 피곤하고 배 고픈날이였어요.

막 상을 차리고 먹으려는데 내편이가 생마늘을 달라는 겁니다.

"초마늘 있잖아요."

어머님 눈치가 안 좋았지만 그냥 넘겼어요.

좀 있다 물 좀 달라기에

"자긴 아내를 원해? 하녀를 원해?"

소리를 빽 질렀지요.

울 어머님 뭐 그거가지고 그러냐며 눈치가 안 좋으시대요.

"말해 봐. 같이 밥 먹는 아내야, 시중드는 하녀야?"

 말 나온 김에 끝을 보려고 따졌더니 당근 아내라네요.^^

"앞으론 상 차리고 앉으면 이거 달라 저거 달라 하지마! 본인이 가져다 먹어. 나 엉덩이 커서 무겁거든. 그래서 일어나려면 힘들어!"

쾅쾅 못을 박았지요.

 

그 후 문제가 심각함을 알게 된 저는 고치기로 했죠.

음식을 내편이가 먼저 챙겨주지 않으면 안 먹으려 했고, 물론 집안에서 챙겨 줄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는 말 부터 하고요.

그랬더니 자기 입에 넣으려던 음식을 마눌부터 챙겨 주더군요.

집안행사 치르면 제가 녹초가 됩니다. 쥐도 나고 발바닥에 멍울도 생기고....

며칠 씩 끙끙대지요.

그때마다 내편이 미안해 하더군요.

그걸 이용해서 그럼 도와달라고 했죠. 상 놓기, 음식 내가기, 상 치우기를 해 주더군요.

 

분가한 후부터는 일요일 청소와 일주일에 두어번씩 반찬을 만듭니다.

(라면반찬, 생계란 비빔밥 -군대서 해 먹던거라는데 애들이 잘 먹어요.ㅋㅋ)

오징어 볶음도 하고 고기 굽는 거 도맡아 하고....

가끔 설거지를 해서 저를 감동 시킵니다. - 이거 당연한 건데 저만 감동 먹나요?

상차리고 치우는 건 울아들들이 물려 받았네요.

(아들들아, 결혼하면 아내 일할 때 같이 거들어라.)

 

요즘 제 주변 사람들이 저 보고 왕비랍니다.

그런 거 보면 내편이를 많이 바꾼 거지요.


 

8월 어느날...

글씨를 굵게 하는 건 시력이 떨어져서야.

너희들도 그러니? ^^

(안경을 쓰면 되는데 몸에 걸치는 걸 싫어하는터라 귀찮아서 안 쓴다.)

 

그제 흰멍이(강쥐)오줌 수발하다 허리를 삐끗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베란다에 내 주고 쉬야 다 누면 들여놔줘야 되거든.

(깔끔쟁이라 제 오줌 묻는 것도 싫어한다. 오줌에 갇혀서 오도가도 못하고...다리가 불편하니 한자리서 다 누질 못하고 찔끔찔끔 돌아치며 누거든.)

아무튼 난 흰멍이한테 전생 빚이 많나벼.

몇 년 전에도 안고 나갔다가 들어 와 내려 놓다 허리를 삐끗했었지.

침 맞는 게 무서워 미련 떨고 있는데, 아무래도 안되겠다.

오늘은 침 맞으러 가야 돼. ㅠ.ㅠ

 

어릴 적 동상이 걸렸단다.

할아버지가 침 놓는 분이셨어. 그땐 자격증 없이도 하는 시절이었지.

근방에서 용하다는 평판이 나서 방마다 손님이 진을 치고 있었지.

그런 분이니 집안사람들 아프면 당연히 침으로 다스렸지.

동상 걸린 발에 침을 맞는데 날이가면 갈수록 아픈거야.

그게 낫는 증거라고 할아버진 말씀 하셨지만.....

며칠을 못 맞고 그만뒀단다.

그때부터 할아버질 슬슬 피했어. ㅋㅋ

(할아버지, 보고 싶어요!)

 

그래서일까?

지금도 병원을 진득하게 다니질 못한다.

조금 차도가 있으면 뚝, 약도 마찬가지고....^^

 

허리가 아픈데 어제 하루종일 누워 있었더니 감각이 마비 돼서 어디가 아픈지 모르겠다.

자다자다 지쳐서 잠도 안 오고, 활동을 안 하니 먹는 것도 시들하고...

나도 모르게 인생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 화들짝 놀라 미뤄둔 일들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쁘지.

준비중인 책이 나오기전에 다음원고를 완성해야 되는데,

아니 초고라도 마쳐야 된다는 생각에 컴에 앉았는데 보다시피 딴짓만 하고 있다. ㅋㅋ

 

아~ 허리 아퍼!

이 글 쓰는데도 몇 번씩 일어났다 앉았다 한다.

허리가 꾸부정한게 할머니 같아서 피싯 웃고, 임산부처럼 허리 받치고 다니는 게 우습고, 저랑 놀아 달라고 지분거리는 조카 녀석에서 글 쓴다고 빽~ 소리 지르고...ㅋㅋㅋ 

( 글 쓴다면 방해 안 하려 하는 기특한 놈이거든.^^)

 

와우, 와우~

도중에 멜을 확인 했는데 같이 근무하던 분이 가을에 밤 줏으러 가자네.

작년까지 수상분교에 근무했었는데 올해 시내로 나왔거든.

참, 예성 나온 친구들은 알겠다. 6학년2반이였던 이명순씨인데....

동창이라도 난 6학년 때 전학가서 얼굴만 알았었지. 그러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면서 친구가 됐어.

꼭 언니 같은 친구다.

 

나, 왜 이러니.

누가 궁금해 하지도 않는데  내가 다니는 사이트에 글 안 올리면 빚진 거 같다.

그래서 일이 손에 안 잡힌다.ㅋㅋ

여기가 마지막 들린 곳이니 이제 진짜로 일해야지.

(기획물을 쓰고 있어서 사진 찍고 편집하고 올려야 된다.-요즘은 내가 웹그래픽 하는 사람 같다.)

 

참참참, 도서관에 열람실 생겼단다.

어디 갈 데 없을 때, 책 보고 싶을 때,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을 때, 혹시나 날 만날까 기대될 때.

와라~

참고로 난 오전에만 도서관에 간다. 오후엔 살림해야지.ㅋㅋ

 

네티즌 힘이 위대하단 걸 느끼는 요즘이다.

열람실 건도 그렇고, 좁은 인도에 설치된 광고게시대 때문에 글 올렸더니 금방 반응오더라.

너희들도 건의할 일 있으면 인터넷에 올려라.^^

 

볕이 따가운데 아깝다.

나라도 가서 쬐일까? (0.-)

 

 10월 월악산에 다녀와서...

 "으헉! 자기야, 나 좀 일으켜 줘."

발 다리가 바닥에 묶여 있는 거 같다.

혼자 버르적 거리다 내편이를 불렀다.

 '월악이 너 때문이야. 그래도 좋았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끙끙대면서도 얼굴가득 미소가 번졌다.

내편이도 그런 지 어쿠쿠~ 하면서도 얼굴이 밝다.

 

 어제 벼르고 벼르던 월악산에 다녀왔다.

 몇 년 전 하도 고생을 해서 기약한 다음이 바로 어제였다.

(그땐 늦가을에 가서 단풍 찌끄러기만 봤다. 죽을 고생해서 올라 간 영봉이 넘 추워서 찜만 하고 왔다. 게다가 깔고 앉았던 아들 옷을 놓고 왔다. 조금 내려 왔는데, 다시 올라 갈 엄두가 안 나서 포기한 아들 옷은 산짐승들의 보금자리가 됐을까? 그래도 좋았다. 멀리 보이는 충주호, 계명산, 치악산......)

 그때 알았다.

너무 너무 힘들면 몸이 제 맘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내려올 때는 발이 저절로 떨어져서 걸어지더라.

가끔씩 원하지 않아도 풀썩 무릎이 꺾이기도 하고....ㅠ.ㅠ

(이때 정말 황당하다. 허망하기도 하고...내 몸이 내 말을 안 듣다니..몸을 맘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월악산 홈에 들어가니 단풍이 10월 중순경에 절정이라는데, 너무 이른 건 아닐까? 

아무리 시간을 짜 내도 추석연휴밖에 갈 시간이 없을 거 같아 감행한 산행이 딱이었다.

날씨도 좋고, 하늘은 높고, 단풍은 알록달록. 시야가 딱 트여 아래가 다 보인다.

그동안 월악이를 만나려고 운동을 했는데, 어느 정도 효과가 나타날 지 알 수 가 없다.

게다가 요즘들어 제사다 생신이다 해서 건너 뛴 게 많으니.....

 

공포의 계단이다.

전에 왔을 때 막 설치했던 철계단에 놓인 미색 나무들이 이제 세월의 흔적을 머금고 갈색으로 변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요령대로 지그재그로 오르기로 했다.

대각선으로 열걸음 걸은 후 반대편 쪽으로 열걸음 걷는데 그러다보니 계단수를 세게 되었다.

돌계단, 나무계단은 빼고 철 계단만 1,072개이다.

(어쩜 100개가 더 더해 져야 되는 건지도...내 기억력을 믿고 싶지만...)

 

정말 운동 덕을 본 것 일까 전보다 훨씬 수월하다.

같이 간 지인들은 아무 준비없이 갔다가 고생을 많이 했다.

아마도 우리 가족보다 3-4일은 더 아프리라.^^

 

요즘은 놀러 가기도 편해졌다.

산 입구까지 차를 타고 가고, 아침은 해장국, 점심은 깁밥을 사고 저녁은 손짜장을 먹었다.

그러니 몇 년전까지만 해도 도시락 싸랴,  먹은 거 치우랴, 저녁 준비하랴....

주 활동보다 더 바빴던 주부가 많이 편해졌다.

밤에는 찜질방에 갔다.

몸이 찌부둥할 때마다 가는 찜질방이라 이젠 내집처럼 편하다.

입을 떡 벌리고 코를 드르렁거리며 자기도 한다. ㅋㅋ

몇 시간 자고 일어나니 사지를 묶인 아니 바닥에 붙인 것처럼 버르적 버르적~맨 위의 상황이다.

내맘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오직 머리 뿐이더라.

내편이랑 한참동안 실실거리다 끙~ 일어난 내편이가 일으켜줘서 일어났다.

내편이가 당직인 관계로 여느 때와 같이 출근해야 한다.

'우씨, 이런 날은 열 시쯤 가면 안돼.'

왜 안 될까마는......미련을 떨치고 찜질방을 나왔다.

집에오니 아들놈들이 안방을 점령하고 자고 있는지라 나도 서둘러 책을 챙겨 도서관에 왔다.

모처럼 조카를 안 봐도 되고,

아들들 잠을 방해 하지 않고,

또 내 방을 뺏긴채 서성거리기 싫어서다.

 

두어시간 책을 봤을까, 꾸벅,꾸우벅~ 병 든 병아리가 따로 없다.

잠 깨려고 움직였더니 고단한 몸이 본래로 돌아가는지 아픔은 더 생생하게 살아난다.

걸을 땐 뻗청다리,

계단 오를 땐 끙끙끙,

거꾸로 내려 온 덕에 팔도 아프다. 아쿠쿠!

계단 내려올 땐 108배 한 보살 같다. 아니 어젠 1,080배 한 거다.

'다시 월악을 기약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기도는 누가 들었을까? 산신령일까?

 

전에 월악을 다녀온 후 치악도 소백도 도락도 제비봉도 다 수월했었지.

고생은 사서도 한다더니 그 말이 딱 맞다.

이제 난 얼마동안 수월한 산행을 즐길거다.

그러다 또 다시 극기훈련처럼 월악에 오르던지 설악으로 대청이를 보러 갈거다.

분명 그럴거다.

 

이번 산행은 월악을 보는 마지막일거라고 생각 했는데,

 다시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긴 연휴 의미있는 시간을 가진 거 같아 뿌듯하다.